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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주가 본격적으로 조각보 공예를 시작한 것은 1999년, 40대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였다. 1999년 그는 자수공예 명장인 김현희 선생의 <전통공예학교> 학생이 되었고, 2000년엔 국립중앙박물관의 천연염색 과정도 수료하였다. 원래 조각보라는 것은 쓰다 남은 천 조각을 이어붙인 것이었지만 현대 생활공예로서 조각보는 아름다운 천을 사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생활공예로 나아갈 수 있다. 재료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지 않고는 좋은 공예가가 될 수 없다. 요컨대 재료의 성질을 장악해야 한다. 이리하여 최덕주의 재료에 대한 연구와 탐색이 시작되었다. 한산모시, 안동포, 상주명주 등 우리의 전통 천에는 어떤 명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네 서정이 깃들어 있다. 물감의 경우 화학염료가 아니라 쪽(파랑), 잇꽃(분홍), 치자(노랑), 감(갈색), 쑥(초록), 양파(주황), 먹(검정) 등으로 물감을 들여야 제 맛이 나고 제 멋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도 채도와 명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발효시기를 놓치지 않고 절기에 맞추어 본인이 직접 작업해야 자기 취향에 맞출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덕주의 조각보에서 그만의 칼라를 보여준 것에는 이런 수고로움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으로 조각보를 만드는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조형요소는 기하학적 구성과 색채의 배합이다. 여기부터는 크래프트가 아니라 아트와 관계된다. 조각보 공예가는 무엇보다도 전통 조각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길라잡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조각보 공예는 불가불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된다. 원조로 따지자면 전통 조각보가 앞서는 것이지만 현대미술로의 성과는 기하학적 추상이 더 높이 성취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취를 다시 현대 조각보 공예가 흡수하여 또 다른 차원의 공예미술로 이끌어 가는 것이 오늘날 조각보 공예가의 작가적 사명이고 과제로 될 수밖에 없다.

“저는 조각보에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나올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을 얻은 것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궁궐에 대해 말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이상으로 잘 설명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조각보 공예가 최덕주가 획득한 예술적 성취를 미술작품을 비평하듯이 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낱낱 작품에서 그의 구성 솜씨가 어떻고, 색채 감각이 어떻고를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천이라는 재료와 그것을 사용한 디자인 감각 내지 취향을 말하면서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그의 조각보 작품을 즐길 수 있다. 공예이기 때문에 절대로 감상자에게 어떤 예술적 긴장이 강요되지 않을 것이다. 멋지다. 예쁘다. 앙증맞다. 단색조인데도 화려한 분위기가 있다. 화려한데 튀지 않아서 좋다. 구성이 단순해서 더욱 마음에 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최덕주의 ‘수직풍경’전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랬으면 된 것이 아닌가.
유홍준(미술평론가/ 전 문화재청장)